[민통선 사람들] ⑧ 이북 그리운 실향민들의 안식처 통일촌 부녀회식당

  • 등록 2024.08.13 18:43: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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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콩·임진강쌀 등 특산품으로 음식 만들어
안보관광객·실향민·군인 등이 고객…한선희 부녀회장 "실향민들 오세요"

 

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연예인 사인 걸어둔 거 아니에요. 세검정에 사시는 나이 지긋한 실향민 어르신이 밥 잘 먹었다고 이렇게 적어두고 가셨어요."

 

통일대교를 건너 경기 파주시 군내면 통일촌 마을에는 부녀회 회원들이 운영하는 '부녀회식당'이 있다.

 

1985년 장단면사무소 건물이 지어지면서 마을주민들이 파주 특산물로 음식을 만드는 식당을 차렸다. 통일촌 부녀회가 운영을 맡은 식당은 내년이면 어느덧 마흔살이 된다.

지난달 19일 오전 이 식당에서 만난 한선희(67) 부녀회장은 단체 관광객의 점심을 준비하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한 부녀회장은 "170명의 단체 손님 때문에 오전 8시부터 출근해서 음식 준비하고 있다"며 "하루에 손님은 많은 날엔 200명, 적은 날은 150명 정도 온다"고 말했다.

 

부녀회식당에서는 72명의 부녀회원 중 한 부녀회장과 비교적 젊은 회원들이 장사하고 있었다.

 

전날 저녁에 손님 규모를 미리 파악한 부녀회장이 회원들에게 알려 3∼5명을 지원받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요 고객은 민통선 안보 견학을 오는 손님과 군인, 실향민, 그리고 지역 주민이다.

 

민통선 지역 관광객에게는 부녀회식당에서 밥을 먹는 것이 하나의 코스로 자리잡았다. 관광버스를 타고 제3 땅굴과 도라전망대, 도라산역 등을 둘러본 후 식당에 들러 부녀회 회원들이 직접 재배하고 만든 정감 넘치는 음식을 맛본다.

 

메뉴는 손두부백반과 된장찌개, 제육볶음, 매운탕, 닭볶음탕 등 다양하다.

 

한 부녀회장은 "통일촌 주민들이 직접 농사지은 파주 특산품 장단콩과 임진강쌀 등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며 "제육볶음이 제일 잘 나간다. 우리 제육볶음은 불맛이 나서 특별하다"고 소개했다.

 

이른 아침인데도 부녀회식당에서 식사하는 군인과 주민이 많았다.

 

식사를 마치고 나가던 권영한(85) 통일촌 노인회장은 "여기 식당이 최고다. 회장님 음식 솜씨가 좋아서 인근 부대 병사들도 오고 심지어 민통선 밖에서도 먹으러 온다"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실제로 이 식당에서 식사한 관광객 중 일부는 그 맛을 잊지 못해 다시 찾기도 한다.

 

한 부녀회장은 "식당만 다시 오고 싶다는 손님들은 군부대로부터 사전 출입 심사를 받은 뒤 우리가 봉고차로 직접 모시고 온다"고 전했다.

 

 

장단면 토박이인 남편과 결혼한 한 부녀회장은 통일촌에 거주한 지 45년.

 

평범한 가정주부로 지내다가 2015년 부녀회장이 됐고 식당까지 운영하면서 새로운 삶이 시작됐다.

 

그는 "처음엔 잘 몰라서 결혼하고 계속 집에만 있었는데 나와서 식당 일을 해보니깐 재미있었다"며 "관광객들이나 어르신들에게 음식을 제공한다는 데 자부심이 생겨 지금까지 하고 있다"고 했다.

 

내년이면 부녀회장을 맡은 지 10년이 되는 그를 주민들은 '만년 부녀회장'이라고 불렀다.

 

식당 계산대 옆 벽에는 '된장찌개 맛있게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등의 글이 붙어있었다. 유명 인사의 방문을 자랑하기 위해 붙여 놓는 일반 식당의 메모와 달리 사인이 없었다.

 

한 부녀회장은 "네 분의 실향민 어르신이 고향을 바라보기 위해 통일촌을 자주 찾았다. 이분들이 식사하고 가시면서 적어두고 가신 것을 붙여놨다"며 "자기 평생에 기억에 남을 만한 식사를 하고 간다는 말은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이어진 그의 말은 콧등을 찡하게 했다. "그런데 이분들이 안 오신 지 1년이 넘었어요. 아프신 건 아닌지 걱정되네요."

 

 

한 부녀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인터뷰까지 마친 뒤에도 기사를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매달렸다.

 

"식당이 홍보되는 건 원치 않아요. 이북 고향이 그리워 오는 단골들만 있으면 됩니다."

 

 

 

박현정 기자 chungain10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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