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실] "'한국 사람보다 장구 더 잘 친다' 소리 들으면 활짝 웃죠"

  • 등록 2024.10.26 15:47:00
  • 조회수 1
크게보기

임실필봉농악보존회서 장구 치는 페루 국적의 지안카를로씨
전북대 동아리서 풍물 배워…"변주 다양한 흥겨운 가락이 매력"

 

주)우리신문 이영식 기자 |   "얼쑤~ 잘한다~."

 

신명 나는 전북 임실필봉농악 공연 한 판.

 

알록달록한 고깔을 쓰고 장구를 멘 채 장단을 이끄는 연주자 중 유독 키가 크고 코가 오뚝한 청년이 눈에 띈다.

 

페루 국적의 게라 파디야 지안카를로 에데르(Guerra Padilla Giancarlo Eder, 32)씨다.

 

지난 23일 풍물공연을 마치고 만난 지안카를로 씨는 "주변 사람들이 한국 이름과 비슷한 '지안'이라고 편하게 부른다"며 "풍물을 오래 해서인지 이제는 조금 다른 생김새를 특별하게 여기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며 겸연쩍게 말했다.

 

2015년에 한국에 온 지안카를로씨는 그로부터 4년 뒤, 전북대학교 풍물패 동아리 '덩더쿵'에서 풍물을 배웠다.

 

전북대 항공우주공학과에서 석사과정을 마친 뒤 박사과정을 시작할 때였다.

 

당시 캠퍼스는 동아리 홍보 부스로 가득 찼었는데, 장구와 북을 탁자에 올려 두고 신입생을 모집하던 덩더쿵이 눈에 띄었다.

 

지안카를로씨는 "한국에 막 왔을 때 어학원을 다니면서 사물놀이 공연을 봤다"며 "처음 들어본 리듬이 신기해서 마음에 담아만 뒀는데, 다시 장구를 보니 한번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장구와의 긴 인연이 시작됐다. 현재는 국가무형유산으로 등록된 임실필봉농악을 연주하는 임실필봉농악보존회(필봉보존회)에서 높은 난이도를 요구하는 채상(상모 돌리는 사람)반 교육까지 마치고 필봉농악 공연에도 당당히 참여하고 있다.

 

지안카를로씨는 "혼자 동아리방에서 상모를 돌리고 있었는데, 그걸 본 필봉보존회의 한 선생님이 '채상은 몸의 감각이 중요해 제대로 배워야 한다'며 교육을 권유했다"며 "그래서 방학 기간을 이용해 세 차례 필봉보존회에 가서 상체에 힘을 빼고 턱 끝을 움직이는 등 채상 감각을 익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풍물은 기본 장단에 다양한 변주가 가능한 흥겨운 가락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지안, 한국 사람보다 장구를 더 잘 친다, 재능이 있다'는 소리를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활짝 웃었다.

 

 

지안카를로씨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가나다라'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고 한다.

 

항공권과 등록금, 생활비를 지원받을 수 있어 큰 고민 없이 장학생으로 한국에 왔고 이후 장학생 자격조건에 따라 1년 6개월간 어학원을 다니면서 한국어를 배웠다.

 

그는 "페루의 대학교(Universidad Tecnológico del Peru)에서 항공우주를 전공해 한국에서도 비슷한 공부를 하고 싶었다"며 "페루에서 수도 리마에 살았는데, 리마는 늘 사람이 많고 복잡해 조금 조용한 지역에서 살아보고 싶어 전북대학교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석사과정 때는 실험실과 자취방만 오가는 단순한 생활을 했다.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는 편이라 외롭지는 않았지만 이렇게 공부만 하다가는 아쉬움이 많이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그는 "동아리 활동을 하고 나서 다 함께 술도 마시고 사람들과 조금씩 어울리게 됐다"며 "무사히 졸업논문을 쓸 수 있을지 걱정도 많았지만, 평일 내내 책상에 앉아있는 스트레스를 주말에 장구를 치면서 해소했다"고 말했다.

 

올해 박사 과정을 마친 지안카를로씨는 현재 같은 과 대학원생을 상대로 영어강의를 하고 있다.

평일에는 실험과 강의를 하고 주말에는 장구를 치면서 좋아하는 음악을 하는 지금의 생활도 만족스럽다.

 

그는 "2년 전쯤 엄마가 한국에 와서 임실필봉농악 공연을 봤는데, 꽃상여가 나가는 장면에서 엄마가 돌아가신 아빠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며 "이렇게 한국과 페루는 다른 나라지만 무언가 통하는 게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리마보다 비교적 차분하고 안전한 한국이 좋다"며 가끔 엄마가 만들어주던 페루 음식이 그립지만 당장 페루로 돌아갈 계획은 없다고 덧붙였다.

이영식 기자 dlysj@naver.com
Copyright woorinewspaper. All rights reserved.

주)우리일보 | 주소 : 경기 파주시 문산읍 사임당로 65-21, 201로(선유리, 정원엘피스타워) 등록번호: 경기, 아53189 | 등록일 : 2022-03-17 | 발행인 : 주식회사 우리신문 전용욱 | 편집장 : 박현정(010-6878-0012) | 전화번호 : 031-952-3944 Copyright woorinewspaper. All rights reserved. 서울 사무소: 서울시 종로구 돈화문로 5가 1 피카디리폴리스 2F 대구경북 사무소: 경북 경산시 중앙로 18길 13 인천 사무소: 인천시 서구 가정로 297 충남 사무소: 충남 홍성군 광천읍 홍남로 65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