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폐업도 돈 있는 사람이 할 수 있습니다."
부산 동래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A(37)씨는 "장사하다 늘어난 빚 때문에 폐업 신고를 하지 못하고 새 임차인을 1년째 찾고 있지만 쉽지 않다"며 이같이 푸념했다.
경남 함안이 고향인 A씨는 4년 전 부산에 정착해 고깃집을 창업했다.
해당 프랜차이즈 타 지점에서 오랜 기간 점장을 했던 터라 자신감도 있었다.
하지만 개업 1년이 지난 뒤부터 적자가 이어졌다.
가족 같은 직원들을 하나둘씩 줄여도 대출이자를 내기가 버거웠다.
내일 당장 폐업 신고를 하고 싶지만 이대로 가게를 비우면 1억원이 넘는 권리금을 날리고 3천만원에 달하는 폐업 비용이 발생했다.
그는 "폐업도 돈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또 한 번 좌절했다고 말했다.
500만원에 달하는 임대료라도 낮춰달라고 임대인에게 사정했지만, "임대인도 힘들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A씨는 손님은 과거와 비교해 줄어드는데 주변 상권에 비슷한 고깃집이 우후죽순 생겨난 것을 장사 실패의 원인으로 꼽았다.
그는 "대출받아 인테리어를 새로 하고 가게 이름까지 바꿔봤지만 이미 늦었고, 역부족이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부산은 한때 자영업의 도시로 불렸다. 전국 8대 대도시 중 자영업자 비율이 높은 곳에 속했다.
고령화 속도가 빨라 퇴직 후 자영업에 뛰어든 시민들이 상대적으로 많았고 양질의 일자리가 부족해 취업 대신 자영업을 택하는 청년들도 많았다.
경기가 나빠지면서 상황은 급격하게 변했다.
회식 문화가 사라지고 고물가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서민 지갑까지 얇아지면서 경쟁력을 잃은 자영업자들이 하나둘씩 버티지 못하고 폐업하기 시작했다.
부산 중구 부평동에서 37년째 음식점을 운영하는 김모(70)씨는 "IMF, 코로나19 다 겪어 봤지만, 지금이 제일 힘들다"며 "12월에 예약 손님이 한 팀 있었는데 탄핵정국으로 나라가 시끄러워지자 연말 모임도 줄줄이 취소돼 정말 힘든 연말 연초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단골을 생각해 가게 문을 열고는 있지만 마음속으로는 수십번도 넘게 폐업을 고민하는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주변에 잇따르는 폐업이 다른 폐업을 불러오며 전염병처럼 공실이 번지고 있다고 상황을 전했다.
김씨는 "우리 가게 옆에 숙박업소가 폐업한 이후로 손님이 더 줄었다"며 "남포동, 부평동 전체에 공실이 너무 많아 유동 인구가 전체적으로 줄어 자영자들이 다 같이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지갑을 여는 젊은 층이 많이 찾으면서 신흥 상권으로 주목받는 광안리와 전포동의 상인들이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광안리에서 8년간 운영하던 고깃집을 폐업하기로 마음먹은 김모(45)씨 "광안리 상권이 다른 곳보다 장사가 잘되더라도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한 가게가 한 장소에서 오래 영업하기는 사실상 힘들다"며 "8년째 월세와 관리비를 합쳐 400만원을 내고 있었는데 재계약을 하면서 임대인이 월세를 100만원 올려달라고 요구해 결국 폐업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전포동에서 가게 2개를 운영하는 청년 창업자 조모(38)씨는 "지갑을 여는 청년인구가 감소하고 있고 유행하는 상권이 계속 변화하고 있어 한 곳에서 오래 장사하면 위험부담이 크다"며 "지갑을 여는 청년인구가 빠르게 감소하고 있어 자영업자로 계속 생존할 수 있을지 고민이 많다"고 말했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연합회 회장은 "부산은 자영업 비율이 높기 때문에 골든타임을 놓치면 부산 경제 전체가 위험해질 수 있다"며 "여러 대책이 나오고 있지만 지역 실정에는 맞지 않는 정부 대책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가 많아 지역 상황에 맞는 핀셋 대책이 필요한 실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