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우리신문 류석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의 군사원조를 전면 중지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3일(현지시간) 전해졌다.
이는 자신의 종전구상에 우크라이나가 공개적 이견을 드러낸 데 대한 초강경 대응으로 동맹이나 우방을 길들이기 위한 노골적인 일방주의로 주목된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익명의 미국 국방부 고위 당국자는 우크라이나의 지도자들이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a good-faith commitment to peace)을 입증했다고 트럼프 대통령이 판단할 때까지 미국이 현재 제공 중인 모든 군사원조를 멈추기로 했다고 전했다.
이 당국자는 비행기 혹은 배편으로 운송 중인 무기나, 폴란드 등 제3국에서 인도를 기다리고 있는 물자를 포함해 이미 우크라이나에 도착하지 않은 모든 군사원조가 멈추게 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처는 트럼프 대통령이 피트 헤그세스 국방부 장관에게 내린 명령에 따른 것으로 즉각 시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른 백악관 당국자는 AFP통신에 익명으로 보낸 성명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조치를 확인했다.
이 당국자는 "대통령이 평화에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명백히 밝혔고 우리는 우리 파트너들이 그 목표에 전념하길 원한다"며 "우리는 원조가 해결에 기여한다는 것을 확실히 할 때까지 원조를 중지하고 재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원조 재개의 조건으로 제시한 '평화를 위한 성실한 약속'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구체적으로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최근 상황 전개를 살펴볼 때 이번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종전구상을 우크라이나가 그대로 따르기를 압박하는 사실상의 제재라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백악관을 찾은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에게 자신의 종전구상을 압박한 바 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의 천연자원, 인프라 수익의 절반을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공동으로 소유한 기금에 투입하는 광물협정을 추진했다.
그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의 재침략을 억제하기 위해 요구하는 미국의 안전보장을 배제한 채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조속한 종전을 요구하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젤렌스키 대통령이 이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자 거칠게 면박을 주고 사실상 백악관에서 쫓아냈다.
그는 "당신이 합의하거나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빠질 것이다. 우리가 빠지면 당신은 (홀로) 끝까지 싸우게 될 것"이라며 군사지원 중단 가능성을 시사한 바 있다.
미국의 군사원조가 중단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이 그간 전황을 바꿀 수 있도록 제공한 무기의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전쟁 수행에 큰 어려움을 겪게 될 전망이다.
미국은 다양한 방식으로 우크라이나를 지원했지만, 이 중에서 국방부의 자체 재고에서 무기를 지원하는 방식이 가장 큰 역할을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미국이 무기 지원을 중단하면 우크라이나는 미국산 에이태큼스(ATACMS) 미사일이나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 등 러시아 영토를 직접 공격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다. 또한 공중방어시스템 등 후방을 보호하는 능력까지 저하될 수 있다.
전문가들은 몇달만 지나면 이번 조치가 전장에서 체감될 것으로 관측했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가 승인한 무기 지원 등으로 일부 무기고가 채워진 상태이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해 말 공중방어시스템과 스팅어미사일 등 12억2천만 달러(약 1조8천억 원) 상당의 무기를 우크라이나에 보낸 바 있다.
미국이 무기지원을 중단할 경우 우크라이나는 유럽 국가들의 도움으로 일부 부족분을 채울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된다.
싱크탱크 카네기국제평화재단의 선임 연구원 마이클 코프먼은 "미국이 올해 초 우크라이나에 보낸 포탄과 향후 유럽의 지원을 감안한다면 우크라이나의 포병 탄약 수요의 상당 부분을 충족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올해 중반에는 우크라이나가 더 이상 전쟁을 수행할 능력을 크게 상실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관측이다.
싱크탱크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선임 고문인 마크 캔시안은 미국 CNN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유럽의 지원 등으로 우크라이나가 2~4개월은 버틸 수 있을 것이라며 "전선은 계속 흔들리고 결국에는 무너질 것이며 우크라이나는 불리한, 심지어 재앙적인 종전 합의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같은 조치가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에만 유리한 상황을 만든다는 비판도 나온다. 러시아를 '수혜자'로 만드는 미국의 전략이 중국과 이란, 북한 등 적성국들에 잘못된 신호를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미국 비영리 단체 '우크라이나를 위한 연대'의 미콜라 무르스키는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의 인터뷰에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원조 중단은 미국 국익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며 "러시아, 중국, 이란에서 샴페인이 터지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종전협상 중단이 장기화하면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그 시간을 활용해 추가 영토 확보에 나설 수 있다며 "이번 조치의 가장 직접적인 수혜자는 푸틴 대통령"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푸틴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갈등 장기화가 자신의 입지를 더 강화할 것으로 보고, 협상 자체를 미루기로 결정할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한 유럽의 당국자는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결정은 "옹졸하고 잘못된 것"이라며 이번 조치에 크게 실망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