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염진학 기자 | 지난 8월 31일, 광양시 봉강면 비봉복지센터에서 열린 ‘제11회 산사음악회’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이번 행사, ‘봉강 백운제 별밤 페스티벌’은 더위로 지친 여름밤에 음악과 문화를 통해 주민들의 마음을 치유하고자 마련된 축제로, 약 500여 명의 주민과 관람객들이 참여해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문화로 하나 된 여름밤의 축제 ‘산사음악회’는 봉강면에서 2012년 첫 개최된 이후 주민들의 사랑을 받아온 문화 행사로, 올해로 11회째를 맞이했다. 봉강면 청년회의 주관으로 열린 이번 음악회는 생활문화 동아리 10팀의 다채로운 공연과 함께 비봉풍물단의 사물놀이로 시작되어, 관객들의 흥을 돋우었다. 이어서 광양시립국악단의 국악 공연, 주민들의 줌바댄스, 기타, 난타 공연과 함께 축하 가수들의 무대가 펼쳐지며 여름밤의 분위기를 한층 더 뜨겁게 달구었다. 다양한 체험 행사와 특별한 경험 제공 음악 공연 외에도 다양한 부대행사들이 관람객들의 눈길을 끌었다. ‘우리 동네 문화의 날’ 영화 관람 행사와 ‘백운제 행복 피크닉’ 워터슬라이드, 네일아트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어, 모든 세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축제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와, 공기 달다', 경기도 용인에서 온 초등학생이 DMZ 관광버스에서 내리자마자 한 말인데 아직도 잊히지 않네요. 어린이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신기했어요. 우리 마을을 그보다 더 잘 표현할 수 있을까요?" 약 10년 전 어느 해 5월의 봄날을 떠올리며 조봉연(67) 해마루촌 농촌체험마을 위원장은 눈빛을 반짝였다. 그는 "해마루촌은 사람이 50년간 살지 않았던 지역이고 지금도 개발이 제한돼 있다"면서 "환경은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고, 유적지에도 사람의 발길이 별로 닿지 않은 상태"라고 전했다. 경기 파주 민통선 마을의 '막내' 격인 해마루촌의 제1대 이장을 지낸 조씨는 약 20년간 이곳의 생태환경과 역사 유적을 홍보하는 데 앞장서 왔다. '동의보감'의 저자인 허준 선생의 묘와 덕진산성 등 민통선 내 알려지지 않았던 관광자원을 홍보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직접 DMZ 관광버스에 올라 해설사로 수많은 관광객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 16일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해마루촌에서 그를 만나 민통선 마을에 입주하게 된 계기와 정착 이후의 이야기 등을 들어봤다. 해마루촌은 2001년 파주시 장단군 실향민들을 50년 만에 고향으
`우리기자가간다`에서 (주)우리신문의 기자들과 공감하는 시간을 마련 하였습니다. 기자들의 다양한 취미와 일상들을 독자와 함께 공유 하고자 기자들이 마련한 코너 이기도 합니다. (주)우리신문의 기자뿐만 아니라 독자여러분의 참여가 가능 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주)우리신문 임기섭 기자 | 시원한 가을바람이 부는 아침 출근길. 어느 집 화분에 수줍은듯 피어난 다육이가 나를 잡는다. 문득 생각나는 어머니.... 뜬금없지만 스치듯 바쁜걸음을 멈추게하는 저 귀여운 꽃망울에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 이유가 무얼까.
주)우리신문 염진학 기자 | 광양시는 28일 ㈜포스코와 함께 광양 및 전남지역 중소벤처기업 기술지원을 제공하기 위한 ‘2024 포스코벤처지원단’ 발대식을 개최했다. ▲ “광양을 전남의 실리콘밸리로!” 광양시-포스코, 2024 포스코벤처지원단 발대식 개최 이날 행사에는 정인화 광양시장, 정상경 광양제철소 행정부소장, 고관봉 포스코 동반성장그룹장, 천명식 포스코벤처지원단 대표(파이벡스 대표), 광양 벤처기업 대표 등 80여 명이 포스코벤처지원단의 공식적인 출범을 축하하기 위해 자리에 참석했다. ‘2024 광양 벤처밸리 육성사업’의 일환으로 출범한 포스코벤처지원단은 벤처기업에 대한 체계적인 기술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포스코, 포항산업과학연구원(RIST) 출신 석․박사급 연구인력으로 구성됐다. ▲ “광양을 전남의 실리콘밸리로!” 광양시-포스코, 2024 포스코벤처지원단 발대식 개최 포스코벤처지원단의 전문가 50여 명(△스마트팩토리 △계측기술 △환경에너지 △금속 및 경량소재 분야 등)은 벤처기업의 사업 아이디어 고도화와 애로사항 해결을 위해 정기적인 솔루션데이를 개최하고 1대1 전문가 매칭을 통해 기술 자문, 과제 기획 등을 지원하는 등 벤처기업별 맞춤형 컨설팅에 나설
`우리기자가간다`에서 (주)우리신문의 기자들과 공감하는 시간을 마련 하였습니다. 기자들의 다양한 취미와 일상들을 독자와 함께 공유 하고자 기자들이 마련한 코너 이기도 합니다. (주)우리신문의 기자뿐만 아니라 독자여러분의 참여가 가능 합니다. 독자여러분들의 많은 참여와 응원 부탁드립니다. ※ 편집자 주- 주)우리신문 김경환 기자 | 사랑합니다. 좋아합니다 살아가고 있는 이유 그리워 하는 그 이 때문에 더운 여름에도 땀을 펄펄 흘리면서 포기 하지 않는 이뉴 그 이 때문에 나는요 그 이에게 당당한 사나이로 인정 받고 싶어서 보지 않아도 언젠가는 볼 수 있기에 살아가고 있다 그 이유는 그 이를 사랑합니다 그 이유는 그 이를 좋아합니다. 내가 누군가 사랑하고 좋아하고 그런 날 올 줄 전혀 몰랐네 그 이 생각하고 그리워하고 안 보면 보고 싶어하는 내 자신이 너무 변해서 당황스러울 때 많더라 퇴근 하면 저 멀리서라도 그 이를 바라만 보고 싶어서 그 이 일한 직장으로 달라간다 맘이 편해서 맘이 안도감이 있어서 집으로 오면 웃음이 저절로 나오며 그 이만 바라만 봐도 좋아요 사랑스런 그 이만 있으면 행복감이 넘쳐 흐르는 이 기분 하지만 그 이에게 사랑한다 말을 하지만 그
주)우리신문 임기섭 기자 | “시원한 냉수 한잔 하세요~~~!” 길가는 시민들에게도, 지나가는 차안에도 붉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비닐 봉지 하나씩을 손에 쥐어준다. 날씨가 참 덥다. 35도가 넘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짜증이 나는데 붉은 조끼를 입은 사람들이 무엇인가 들어 있는 봉지 하나씩을 나누어 준다. 신호대기 중인 차안에도 땀기 머금은 웃음으로 봉지 하나씩 넣어준다. 시원하다. 꽁꽁언 생수와 물티슈 그리고 초코파이 한개가 들어있다. 이들은 `부안 밀알회` 즉 봉사하는 사람들이다. `부안밀알회` 이들은 누구인가? 전남대학교 농과대학(현 농업생명과학대학)에 다니던 학생 5명이 의기투합하면서 오지마을 방역과 이‧미용 봉사, 건강검진, 바자회, 집수리 봉사 등 봉사로는 이름 난 사람들이다. 부안사람이면 다 안다. 그들이 이번에는 ‘교통캠페인및 생수나눔’ 으로 뭉친것이다. “교통캠페인도 하고 더운데 시원한 물로 더위를 함께 날리고 좋지않습니까?” 하고 열심히 뛰어다니며 길 조심 차조심을 외친다. 그들에게 물어 보았다 부안밀알회를 간단히 우리는 계몽단체이다 전남대학교 농과대학5명이 의기투합해서 만든 단체이다. 물론 처음엔 5명으로 시작 되었지만 지금은 부안회원들
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아~~ 하고 크게 입을 벌려보세요. ” 대전 코스모연세치과 이 진홍 원장은 일제 강제징용 유가족 중 김씨의 구강상태를 유심히 보고있다. 임플란트와 충치 신경치료를 필요로 한다며 유족인 김씨에게 X-RAY를 보며 설명하면서 김씨의 상태를 살핀다. 우리신문은 (사)우키시마연합회와 함께 일제시대 강제로 일본으로 끌려가 노동을 하고 온 강제징용자와 그 후손을 찾아 치과와 내과 치료를 도와주고있는데 그 협력 병원으로 대전의 ‘코스모연세치과‘가 함께 하고있다. 본지 기자가 유족 중 한 분을 모시고 치과를 방문 할때면 늘 듣는 말이 있는데 “진짜 이빨 해주냐” “왜 해주냐 뭔가 바라는거 아니냐”“ 나중에 돈 달라는거 아니냐”는 말이다. 너무 믿기지 않아서 그런것이기에 될 수 있으면 유족분을 모시고 방문을 하고있다. 이 날도 유족분 중 한사람을 모시고 치과를 방문 했다. 유족 상담을 하는데 치아가 너무 아파서 짜증을 많이 내셨기에 좀 먼 거리지만 예약 하고 방문 했다. 아직 시스템이 정상화 되지 않아서 전화예약을 필수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진홍원장은 한 마디로 의료봉사자 중 한사람이다. 연세대를 졸업하고 국제임플란트학회 인정의이다. 한마
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여기는 들어와서 살겠다고 줄 서는 사람은 있어도, 떠나는 사람은 드문 특별한 마을이니까요." 지난 8월 1일 경기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통일촌에서 만난 이완배(70) 이장은 마을에 대한 각별한 자부심을 드러냈다. 1972년 민통선 북방지역 개발정책에 따라 조성된 정착 마을인 통일촌에 1973년 입주한 이래 이씨는 50년 넘게 마을을 지켜왔다. 이장을 맡은 세월만 30년 가까이 되니, 이씨 삶의 역사가 곧 통일촌의 역사이기도 하다. 이씨는 "분단 이후 강제로 고향 땅을 떠나야 했던 부모님을 따라 스무살 무렵 통일촌에 들어왔다"며 "남북관계가 험악할 때는 당장 피난 갈 준비까지도 해봤고, 평화 기류일 때는 개성에 구경을 가보기도 했다"고 회상했다. 북한 땅이 지척인 마을 안쪽 장단면사무소 앞에서는 망원경으로 펄럭이는 인공기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주민들에게는 새삼스럽지 않은 풍경이다. 1973년 당시 제대 장병 40가구와 실향민·원주민 40가구 등 총 84가구 348명이 입주해 지난달 기준으로는 401명이 살고 있다. 약 15% 늘었다. 외부인의 드나듦이 자유롭지 않고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에 들어갈 때면 "지금 무사하냐"는 안부
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국내 유일한 삽자루 공장이라는 자부심을 느낄 겨를도 없이 값싼 중국산 삽자루에 밀려 전기세도 못 낼 정도로 형편이 어려웠어요. 수입산을 국산으로 내다 팔라는 제안도 있었지만 그렇게는 도저히 못 하겠더라고요. 정말 오기로 버텼어요." 강원 원주에는 73년 인생 가운데 60년을 '삽자루'와 함께 한 장인이 있다. 유병태(73)씨의 인생은 그야말로 삽자루의 흥망성쇠와 역사를 함께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삽자루가 발전의 상징물이었던 1970년대 새마을 운동 시기부터 공사·농사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금까지 유씨의 삽자루 인생도 우여곡절을 거듭했다. 약 20년 전부터는 국내에 수입산 삽자루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공장이 하나둘씩 문을 닫아 이제는 유씨 공장이 전국에서 유일한 국산 삽자루 공장으로 어렵사리 자리를 지키고 있다. 모르는 이들은 '삽자루 만드는 게 어려울 게 있냐'고 하지만, 무려 25가지 과정을 거쳐야만 삽날을 견고히 지탱할 자루가 완성된다. 원목에 옹이 나고 터지거나 삭기라도 하면 몽땅 버려야 하기 때문에 참나무 고르는 과정은 까다로울 수밖에 없고, 홈이 1㎝라도 어긋나거나 사포질이 잘못되면 다시 만들어야 해 모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