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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한국의 원로만화가협회장을 만나다

 

 

좋지않은 컨디션에 무거운 몸을 이끌고 이 시대 만화의 중심점에 서 있는 큰 기둥과도 같은 한국 원로 만화가 협회 권영섭회장을 만나러 사당동 한 식당에 들어섰다. 만화가의 상징과 같은  빵모자에  간편한 옷 차림의 권영섭 회장은 특유의 손짓으로 인사를 한다.  만화할아버지. 딱 그이미지 자체다.  주저리주저리 긴말 보다 밥부터 먹자는  그의 한 마디 말에 왠지 푸근함을 느낀다.  (편집자 주)

 

주)우리신문 전용욱 기자 | 

 

안녕하세요 회장님. 회장님 소개 간단히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만화가 권영섭입니다

 

`만화 할아버지`라 더 잘 알려져 있던데 언제부터 만화를 그리셨고 계기가 무엇인지?

저는 만화를 처음 접한게 국민학교 그러니까 요즘은 초등학교지요? 초등학교 3학년 때 만화를 처음 접했어요.  친구들이 만화책을 한두 권 들고 다니는 것을 자주 봤었는데  저는 집에 있는 감나무에서 감을 따다주고 친구들의 만화책을 빌려 읽었지요.  감으로 빌린 만화책을 한 권 두 권 읽다 보니 그 만화책이 교회에서 빌려준 것임을 알았어요 . 그래서 교회를 다니며 교회의 만화책을 모두 읽었는데 그때 만화를 그려야 겠다는 생각을 한것 같아요.  저는 신문 보는걸 좋아 했어요. 이야기나 그림 그리는것도 좋아 했구요. 제가 좋아 했던 그림그리기나 신문 보는게 만화의 근간이었다는 것을 몰랐어요. 간혹 선생님이나 친구들이 만화가 해보란 소릴 듣긴 했지만 진짜 만화가가 될 줄은 몰랐지요. 좋아하는 그림 그리고 좋아 하는 책을 계속 읽아나가던 중 열아홉 살이 되던 해 지역신문 ‘대구매일’에서 주최한 만화 작품 공모전에 덜컥 입선하면서 만화가의 꿈은 더욱 확고해졌었어요. 

 

무작정 서울에 올라가 동아일보 편집국 문화부장을 만났다던데

그랬었어요. 신문에 연재 만화를 그리게 해달라고 조르기 위해서요. 물론 성공은 못했지만 대신  인쇄 조수로 일하면서 만난 김경언 만화가로부터 만화에 대해 배울 기회를 얻었어요. 스승에게서 배운 것들을 바탕으로 1959년 연합일보 아동만화 공모전에 당선된 그는 과학만화 ‘우리들의 척척박사’로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운이 좋았는지 독자들이 좋아해줘서 연재는 3년간 이어졌었어요. 참으로 감사한 일이지요.

 

`오손이와 도손이 ``울밑에 선 봉선이`는 어떤 작품인가

오손이와 도손이랑 울밑에선 봉선이는 조금 달라요. 오손이와 도손이는 고아로 자란 형제가 헤어졌다가 검사와 도둑이 되어 만나는 내용인 이 만화는 당시 아이들에게 공감을 얻는 데 성공했는데, 1960년대 만화계 3대 출판사 중 하나였던 부엉이문고가 새 작품을 의뢰해왔어요. 그때 나온게 봉선이예요. 혹시 우리 기자님은 순정만화 라는걸 아시나요? 이 순정만화라는 장르는 참 독특해요. 이 순정만화라는 장르는 우리나라 일본 대만등 동아시아권에만 있어요. 대만은 우리나라의 순정만화나 일본의 순정만화를 수입한 것으로 자국의 순정만화를 보유 한 것은 우리나라와 일본이 유일할겁니다. 순정만화는 가족만화의 한 부분으로 탄생한거예요 `오순이와 도순이`는 가족만화의 대표 격입니다. 반면 `봉선이`는  소녀취향의 만화예요 1960년대를 풍미한 봉선이는 케릭터만 조금씩 바꿔 시리즈로 출간 되었어요. 아마도 우리나라 최초의 순정만화 히트 케릭터일겁니다. 

 

70년대에 위기가 있었다고 알고있습니다

.네 맞습니다. 순정만화가 고사될 뻔 했지요. 순정만화는 가족만화로 출발 했지만 검열에서 자유로울 순 없었어요.  순정(純情)이라는 용어적 한계속에서 단순히 소녀취향의 만화, 마음착한 소녀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권선징악의 해피앤딩 만화로 머무를 수 밖엔 없어요. 반면 일본의 소녀만화는 순정만화전문잡지의 연재를 통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발전했어요. 결국 우리나라의 순정만화는 독점적인 대본소 출판의 횡포와 검열로 인해 작가의 자유로운 창의력은 봉쇄 되었고 결국엔 작품의 질적 성장도 불가능 했어요. 독자들은 정체되어 있는 우리나라 순정만화를 독자들이 외면하게 되자 대본소는 사라지게 되었어요. 그게 70년대 후방 입니다. 70년대 중반 이후 순정만화 자리를 일본 소녀만화 걸작들이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다만 80년대 신일숙 강경옥 황미나 등 순정만화 작가들이 일본 소녀만화에서 규범화 시킨 형식적 특성을 받아들여 우리 순정만화 정착에 효과적으로  이용했어요. 심지어 순정만화를 토대로 한 게임도 나왔어요. NC소프트의 `리니지`가 대표겠지요.

 

스마트폰 활용도 잘 하신다던데

남들보다 조금 더 잘 쓰는 편입니다. 기억 나는것 중 하나는 2018년에  시니어교육협동조합을 방문 한 적이 있어요.  스마트폰으로 키네마스타 앱도 활용하고 페이스북을 활용하는 법을 배웠어요. 그때 케릭터를 드로잉 해서 선물 했습니다.

 

 한국원로만화가협회를 창립하셨는데

1960년대 만화 대본소는 2만여 개가 넘었어요. 이곳에서 얻은 만화책은 한 번 읽고마는 것이 당연했고, 당시는 질이 좋지 않은 선화지를 사용해 출판 만화책 자체의 질도 떨어졌으며, 너나 할 것 없이 만화가를 하겠다고 몰려들어 만화의 수준에 악영향만 미쳤어요. 그래서 만화책은 사회의 악으로 규정당해 질타를 아주 많이 받았습니다. 여성단체 등 여러 단체가 모여 어린이날만 되면 남산에서 만화책 태우기 운동을 할 정도로 평판이 좋지 않았는것도 사실입니다.  게다가 군부 정권은 만화자율심의위원회를 세우지 않으면 만화를 전부 없애버리겠다고 협박해왔다. 하는 수 없이 만들어진 것이 1968년 창립한 한국아동만화가협회입니다.  이때부터 부회장 세 번, 회장 세 번을 역임하며 협회라는 큰 단체를 운영하는 방법을 익혔어요. 이외에도 어린이전도협회 부회장을 지냈던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원로만화가협회를 만들고 올해 12년째 회장을 맡고 있어요. 우리 사단법인 한국원로만화가협회는 만 60세 이상 작품 경력이 20년 넘는 원로 만화가들로 이뤄진 비영리 법인입니다 경로사상과 이웃사랑, 국민화합과 상생을 위한 작품을 제작하거나 만화 자서전을 의뢰받아 제작하는 등 재능기부도 해요.

 

협회 일을 하는 목적이 있다면

내가 이 일을 하는 데 특별한 뜻이 있는 건 아니에요. 원로 작가들이 적어도 손자들이나 그 자손들이 ‘할아버지 나 뭐 먹고 싶어요. 저 장난감 갖고 싶어요’ 할 때 당당히 사줄 수 있는, 그런 체면 유지하는 정도로만 되길 바랄 뿐입니다. 뒷방 늙은이로 남길 바라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우리 원로들이 젊은 신진 작가들의 또다른 버팀목이 되어주고 싶을 뿐이기도 해요. 그러기위해선 우선 우리 원로작가들의 처우개선이 먼저 되어야 합니다. 그럼 돈이 필요 하겠지요. 정확하게는 돈 벌이 입니다. 우리 원로 만화가들의 그림과 기술을 NFT에 접목해 원로 만화가들에게 고정적인 수입처를 만들어주려 노력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한말씀 해주신다면

바쁘게 살고 미래를 계획하세요. 꿈도 가지시고.  저는  3년 동안 수원시 어린이집을 돌며 유아를 대상으로 만화교실을 열었어요. 또한 노인들을 위한 만화교실을 열기도 했죠. 여러 경로당을 돌며 일주일에 세 번, 두 시간 수업 동안 과거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표현하게 하고, 책자도 제작하게 도우고.. . .  지금은  교육부나 문화관광부 측 인사에게 제안해 여러 재능기부 만화교실을 열고자 계획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보니 세상 사는게 즐겁고 재미있어요. 그러다보면 건강해 지고.복해 집니다.  독자님들도 항상 건강하고 바쁘고 미래의 나 자신을 위해 투자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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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만 앙상…부모 품에서 굶어 죽어가는 가자지구 아이들
주)우리신문 염진학 기자 | "저는 눈앞에서 아들을 잃고 있어요." 팔레스타인 주민 가니마 주마는 9살 된 아들 유니스를 품에 꼭 안고 있었다. 유니스는 심각한 영양실조와 탈수 증세로 가자 남부 칸 유니스의 나세르 병원에 실려 왔다. 유니스의 움푹 팬 얼굴은 창백했고, 앙상한 다리는 축 늘어져 있었다. 주마는 "양심 있는 사람들에게 요청한다"며 "아들이 치료받고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미국 CNN방송은 25일(현지시간) 보도에서 주마가 처한 현실을 보여주면서 8개월 넘게 이어진 전쟁통에 식량 부족으로 고통받는 가자의 참상과 주민들의 절절한 호소를 전했다. 주민들은 식량과 물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자신들의 자녀들이 굶어 죽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가자지구 주민 이스마일 마디는 4살짜리 아들 아흐마드가 영양실조로 황달을 앓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은 살아남지 못할 것 같다"며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정치적 갈등과 전혀 관련 이 없는 이 아이를 구하기 위해 개입해달라"고 호소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한 뒤 며칠이 안 돼 아흐마드는 숨을 거뒀다고 CNN은 전했다. 식량뿐 아니라 깨끗한 물을 구할 수 없는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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