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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가사노동 ‘싸게’ 외국인에게 맡기고 아이 낳으라고요?

저임금 외국인 가사노동자 확대 도입 추진…돌봄의 공공성 해칠 것

 

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제 친구 중 한 명은 입주 가사노동자로 일하고 있는데요. 계약서에 따르면 월 100만 원을 받기로 했지만 실제론 55만 원을 받았다고 해요. 근무 시간은 오전 6시부터 밤 10시까지,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휴일인 일요일은 밤 10시까지 휴가임에도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해 6시 전에 (일터로) 돌아가야 했어요. 식사도 제때 할 수 없었고요. 한번은 계단에서 넘어져 발목이 삐었는데도 고용주들은 그 부상을 무시하고 병원에도 데려가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가사노동자로 5년째 일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의 솔리타 도밍고 무니지트 씨의 증언이다.

 

무시와 차별, 휴식과 음식이 제공되지 않는 환경, 욕설과 고성을 동반한 언어폭력 등은 약소한 편이라고 할 정도로 노동 환경이 열악하다. 이주가사노동자가 미등록 체류인 경우, 더욱 차별적인 대우를 받는다고 했다.

 

지난 16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이주가사노동자의 현실과 노동권 보장 방안 국회 토론회: 국내 이주가사노동자 사례 발표와 실태, 홍콩의 시사점〉에서 그 실태가 드러났다. 이런 현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알아도 문제될 게 없다고 생각한 건지 최근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확대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현재 가사, 돌봄 분야는 내국인이나 중국 조선족 등 동포, 한국 영주권자의 배우자, 결혼이민 비자로 입국한 장기체류 외국인만 취업할 수 있는데, 이를 다른 국가 출신의 외국인에게 확대하겠다는 것.

 

올 하반기에 동남아시아 외국인 100명을 고용하는 ‘외국인 가사노동자 시범사업’을 추진 중이라고 밝혔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작년 국무회의에서 “한국에서 육아도우미를 고용하려면 월 200만~300만 원이 드는데, 싱가포르의 외국인 가사도우미는 월 38만~76만 원 수준”이라며 외국인 가사노동자를 ‘싸게’ 활용하는 것을 강조한 바 있다.

 

심지어 지난 3월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은 최저임금을 적용하지 않고 “월 100만원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도입하겠다”며 가사근로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목적은 저출생 문제의 해결이다. 젊은 부부들, 특히 맞벌이 부부가 ‘싸게’ 가사노동을 해결할 수 있으면 지금보다 아이를 많이 낳을 것이라는 가정에 기반한다. 하지만, 국내/외 가사노동자와 이주여성의 실태, 그리고 여성노동에 관한 전문가들이 자리한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그런 주장과 근거, 그리고 해결 방향 모두 ‘틀렸다’고 진단했다. 

 

국제 사회에서 지탄받는 홍콩, 싱가포르 사례가 부러운가? 

 

최혜영 일하는여성아카데미 연구위원은 정치인들이 “왜 홍콩과 싱가포르 사례만 참조하는지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경우, 돌봄 관련 제도와 공적 서비스가 열악하며, 그걸 메꾸는 역할로 이주가사노동자가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홍콩과 싱가포르는 육아 휴직도, 장기돌봄 휴직도 부재한 상황이며, 특히 홍콩은 보편적 공적 보육 제도가 없고 노인 장기요양 서비스도 오랜 대기를 감내해야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돌봄 정책은 돌봄/일-가정 양립 제도가 부족하고, 공적 서비스 제공보다는 돌봄을 사적(가족)으로 책임지라는 구조”다. “결국 시장에서 이주가사노동자의 노동에 의존하게 되는 경향”을 띨 수밖에 없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이주가사노동자 정책은 북미나 유럽 등 다른 국가의 이주가사노동자 정책과 비교해 봤을 때 문제적인 부분이 많다.

 

주당 노동시간, 최저임금에 대한 규정이 없는 등 차별적 노동 조건이기 때문이다. 조사에 따르면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6시간 노동”할 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휴게 시간도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다. 

 

인권침해도 심각하다. “고용주에게 여권과 고용계약서를 뺏기는 경우나 이동에 통제를 받는 경우”도 있고 “음식이 제대로 제공되지 않거나, 남은 음식이 주어지는 등”의 경험도 비일비재하다. 

 

싱가포르의 경우 ‘여성만’ 이주가사노동자로 일할 수 있으며, “일하는 기간 동안 임신과 출산이 금지”된다. 심지어 “6개월마다 건강검진을 하는데, 임신 검사도 포함”된다.

 

“고용 전에도 임신 검사로 임신 여부를 알려줘야” 한다. 입주가사노동자에게 제공되어야 하는 ‘적절한 숙박 공간’ 또한, “실제론 정말 말도 안 되는 공간인 발코니, 복도, 계단 아래, 선반이나 수납공간, 화장실 한 구석 등”이 사용되고 있다.

 

노동 범위도 “건물 외벽 유리창 청소 등 위험한 일까지 확대되곤 하는데, 이로 인해 노동자가 추락사하는 등의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UN과 ILO(국제노동기구) 등 국제사회는 “이주가사노동자들의 불리한 노동 조건을 개선하고, 다른 노동자들과 같은 조건 하에 노동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최혜영 연구위원은 “싱가포르, 홍콩 등은 (한국 사회가) 참고할만한 사례로 매우 부적절하다”고 짚었다. 이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선 적어도 “이주가사노동자들을 위한 차별금지법, 안전한 이주 보장, 산업재해 인정 등 직업안전보건, 착취와 학대 등을 방지하기 위한 이용자 교육 등 노동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법과 제도를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지 임금이 ‘싸다’는 이유로 제도 도입을 진행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출생률 높이는 방안도 될 수 없을 것

 

“정부는 저출생 대응 및 여성 경력단절 방지를 위해 외국인 가사노동자 활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의 반응은 냉담하다.”

 

 박명숙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교육정책위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부모들은 노동시간 단축이나 육아휴직 확대 등 일-생활 양립을 위한 해결책 등 노동환경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는 건드리지 않고 임시방편 대책만 내놓는다고 토로하는 중”이라는 것.

 

박 위원장은 “이주가사노동자를 고용해서 아이를 돌보는 것이 저출생 해결의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김양숙 플로리다 아틀란틱 대학 사회학과 교수는 “2021년 미국에서 목격된 출생률 반등 현상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다”고 설명했다. “미국은 그간 저임금 돌봄노동을 시장에 방임한 대표적인 국가인데, 세계 각지로부터 끊임없이 저임금 돌봄 노동력이 수급되는 와중에도 2007년부터 2020년 사이 미국의 출생률은 2.1명에서 1.6명까지 떨어지는 상황”이었다.

 

심지어 “미국 출생률을 그나마 견인하던 이주여성들의 출생률조차 코로나 팬데믹 시작과 함께 급격히 추락”하는 상황까지 더해졌다. 하지만 놀랍게도 “2021년, 팬데믹 동안 일자리를 보존하면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었던 고학력 여성들의 출생률이 상승”했다. 

 

김 교수는 “이는 GDP의 27퍼센트 이상을 팬데믹 관련 지원 자금으로 쏟아부은 미국 정부가 예상치 못한 정책 성과 중 하나”이며 “재생산 위기의 해법을 어디서 찾아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례”라 짚었다.

 

“여성들은 단순히 이주여성 노동자들에게 돌봄노동을 전가할 수 있을 때 출산하고 맞벌이를 하는 게 아니라. 고용이 안정되고 일-가정 양립이 가능하다고 느낄 때 그러한 선택을 한다”는 거다.

 

 “출산율과 맞벌이 가정의 육아 문제는 가정 내에서의 공정한 가사분담, 일·가정 양립을 지향하는 직장문화, 그리고 돌봄의 공공성을 높이는 강도 높은 정책으로 접근해야지, 더 싼 돌봄 노동이라는 식의 접근법은 이 문제에 대한 해결법이 될 수 없다”고 김양숙 교수는 재차 강조했다. 

 

저평가된 가사노동의 가치를 높여야 할 판에…

 

 더불어 토론회 참여자들은 ‘값싼’ 이주가사노동자 제도 도입이 가져올 후폭풍으로, 이것이 오히려 가사노동과 돌봄의 위기를 가중시킬 것이라 우려를 표했다. 특히 현장에서 일하고 있는 가사노동자들은 「가사근로자 고용 개선에 관한 법률」(가사법)이 제정된 지 1년밖에 안된 시점에서 이런 논의가 나오는 것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외국인 가사노동자 도입 소식을 듣고, 우리 가정관리사들은 생각이 복잡하다. (정부는) 우리가 하는 노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이제야 ‘노동자’라는 이름을 찾았고, 코로나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돌봄노동이 우리 사회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돌봄노동, 특히 가사노동을 하찮은 일로 치부하고 있음을 확인하게 됐다.

 

정부가 앞장서서 이주노동자에게 저임금을 지급한다면,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노동 가치는 당연히 그 기준으로 떨어질 것이다. 가사노동은 지금보다 더욱 심각하게 저평가될 것이다.

 

박명숙 전국가정관리사협회 교육정책위원장은 “돌봄노동의 저평가로 무임금, 저임금으로 여성노동을 착취해온 것도 모자라, 이젠 이주여성들의 노동력을 착취의 도구로 사용하겠다는 발상”이라며 “성차별, 인종차별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목소리 높였다. 

 

박 위원장은 “가사법이 통과 후, 정부인증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은 1,000개를 목표로 했지만 현재 39개 기관뿐이다. 아직 법이 정착되지 않은 상태로, 국내 가사노동자 대부분은 가사법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실태를 밝혔다.

 

지금은 가사법 시행 후 1년을 평가하고, 오히려 돌봄노동 공공화의 기반을 다져야 할 때라는 것이다. 

 

김양숙 교수 또한 “현재 논의되고 있는 이주가사노동 정책에서 정부는 돌봄의 질 측면에 대해서는 어떠한 고려를 하고 있는가?

 

정부는 혹시 가사서비스업을 기본적인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대충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보고 있지는 않은가?” 물었다. 이어 “돌봄노동에 대한 정부의 이런 시각이야말로 우리 사회의 재생산/돌봄 위기를 불러온 근본적 원인”이라고 비판했다. 

 

최혜영 연구위원은 “돌봄 공백을 채우기 위한 방안으로 민간 돌봄노동 시장의 수요와 공급 차원에서 논의하기 앞서, 돌봄 제도(일-가정 양립 제도, 돌봄 관련 휴가 제도, 노동시간 단축 등) 이행 및 공적 돌봄서비스 부족 차원의 문제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고 짚었다. 

 

토론회 참여자들은 정부와 서울시가 이주가사노동자를 저임금으로 확대 도입하겠다는 방안은, 단지 이주노동자에게 ‘나쁜 일자리’를 제공하는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 돌봄의 공공성을 약화하는 나쁜 신호라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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