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m>핵실험장에서 시작된 물길(남대천)을 가둬 만든 남석저수지의 위성사진. 길주군 출신 탈북민은 해당 저수지가 길주군 전역으로 공급되는 상수도의 수원지라고 증언했으며, 실제로 취수탑으로 추정되는 설비가 포착됐다. [사진제공=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em>](http://www.woorinewspaper.co.kr/data/photos/20230938/art_16952510844729_ec6f57.jpg)
주)우리신문 임기섭 기자 | 북한의 '풍계리 핵실험장'에서 발생한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통해 주민 수십만명에게 확산될 위험이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 가운데 해당 지역 출신 탈북민이 최초로 공개 증언에 나섰다. 핵실험 이후 원인 모를 질병을 앓는 환자가 늘어났지만, 북한 당국의 정보 통제로 위험을 인지할 수 없던 주민들은 그저 '귀신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제20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20일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 광화문에서 열린 북한 핵실험 피해 증언 기자회견에는 김순복씨(이하 가명)와 이영란씨, 남경훈씨, 김정금씨 등 길주군 출신 탈북민 4명이 증언자로 참석했다. 핵실험장 일대 피폭 우려와 관련해서 탈북민이 공개 증언에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011년 한국에 입국한 김복순씨는 길주군에서 거주할 당시 핵실험장이 위치한 풍계리에서 흘러 내려오는 남대천의 물을 식수로 이용했다고 말했다. 그는 "풍계리는 핵실험장이 건설된 뒤 군인들이 차단봉을 설치하고 이동을 통제하기 전까지는 물 좋고 경치 좋은 시골 마을이었다"며 "이제는 (당시의 모습을) 더이상 찾을 길이 없다"고 했다.
특히 김씨는 "언제부터인가 류머티즘 관절염을 앓는 환자들이 늘어났고 결핵이나 피부염에 걸린 환자도 늘어났다"고 증언했다. 이어 "(질병의 원인에 대한) 진단을 명확하게 받지 못한 채로 시름시름 앓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이를 가리켜 '귀신병'에 걸렸다고 불렀다"며 "나으려면 무당을 찾아가 부적을 써야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설명했다.
![<em>제20회 '북한자유주간' 행사의 일환으로 20일 서울 종로구 센터포인트 광화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핵실험 피해 증언하는 탈북민. [이미지출처=연합뉴스]</em>](http://www.woorinewspaper.co.kr/data/photos/20230938/art_1695251024429_14e028.jpg)
이 같은 피해 증언은 지난 3월 본지가 사단법인 샌드연구소를 통해 수집한 길주군 출신 탈북민의 피폭 의심 사례와 일치한다. 당시 증언에 나선 복수의 탈북민은 공통적으로 원인 미상의 소화불량과 암 진단, 두통, 시력 감퇴, 기형아 출산 등 증세에 시달렸다고 밝혔는데, 이는 피폭 시 가장 먼저 나타나는 전형적인 증상으로 확인됐다.
3차 핵실험 당시 길주군에 거주했다는 이영란씨는 탈북 이후 한국에 들어온 뒤 핵실험이 인체에 악영향 위험을 알게 됐다고 증언했다. 이씨는 "길주 주민들은 풍계리에서 내려오는 물을 식수로 이용했기 때문에 대부분 피폭됐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핵실험 이후 하나둘 결핵 진단을 받았고 4년이 지나지 않아 숨졌다"고 했다.
길주군에 남아 지내던 그의 아들도 결핵 진단을 받은 뒤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이씨는 아들이 평양에 있는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중국을 통해 아들에게 돈을 부쳤지만, 당국에서 '길주군 출신 환자는 평양에 한발짝도 들일 수 없다'는 방침을 세워 제대로 된 치료도 받아보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고 설명했다.
文 시절 문제 없다더니…전수검사 결과 주목
![자료출처/아시아경제](http://www.woorinewspaper.co.kr/data/photos/20230938/art_16952509030052_eea9a0.jpg)
앞서 인권조사기록단체 전환기정의워킹그룹(TJWG)은 이러한 피폭 우려를 4년간 추적·조사한 결과를 담아 올해 2월 특별보고서를 냈다. 핵실험장으로부터 유출되는 방사성 물질이 지하수를 타고 주민들과 주변 국가로 확산될 위험을 지적한 것이다. 이후 통일부는 전수조사에 착수했고, 연내 1차 발표를 목표로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다만, 통일부는 문재인 정부 시절 두 차례에 걸쳐 탈북민 40명을 조사했을 당시 9명에게 이상수치가 나왔는데도 '교란변수'를 이유로 검사를 종결한 바 있다. 당시 피검자 가운데 한 40대 여성은 무려 1386mGy가 검출됐는데, 이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수습 작업자의 피폭량을 2배 이상 뛰어넘는 수치에 해당한다. mGy(밀리그레이)라는 단위는 방사성 물질의 체내 '흡수선량'으로, 일상생활에서 10mGy 이상 검출되기 어렵다. 그런데도 이런 수치에 문제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특히 풍계리 핵실험장 일대 주민들은 방사성 물질 유출의 매개체가 될 우려가 큰 지하수, 하천 등을 식수로 이용하기 때문에 어떤 식수원을 이용하는지에 따라 피폭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통일부는 앞선 조사 당시 식수원을 파악해놓고, '유의미한 결과값이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검사 결과는 물론 검사 사실 자체를 공개하지 않았다. 통일부는 이 같은 지적을 수용해 올해 전수조사 결과부터 식수원 조사 등 제반 검사결과까지 함께 공개하겠다는 방침이다.
이신화 "북핵, 안보 넘어 건강 등 인권문제"
이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이신화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는 "북한의 핵 프로그램과 로켓 발사가 주목받고 있지만, 마찬가지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할 이슈는 세상 어디에도 유례가 없는 북한의 개탄스러운 인권 상황"이라고 질타했다. 특히 이 대사는 "풍계리 핵실험장에서의 방사성 물질 유출과 같은 건강 위험이 대표적 사례"라고 강조했다.
수잰 숄티 북한자유연합 대표는 "1999년 미국에서 처음으로 탈북민의 증언을 들었을 때 정치범 수용소에 있던 탈북민의 증언에 많은 사람이 놀랐다"며 탈북민의 용기 있는 증언으로 북한의 인권 상황을 전 세계가 알게 됐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길주군 출신 탈북민의 증언으로 주민들의 건강 피해도 전 세계가 알게 되길 기대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