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한 사람, 한 사람 삶의 체험을 기록하려고 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의 박수남 감독은 8일 서울 CGV 용산아이파크몰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영화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영화 '되살아나는 목소리'는 일제강점기 시절 식민 지배와 침략전쟁에 희생된 조선인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또 하나의 히로시마-아리랑의 노래'(1986) 등을 통해 조선인 피해자 삶을 기록해온 박수남 감독이 그간의 작품에 담지 못한 약 50시간 분량의 필름을 복원해 만들었다. 박수남 감독의 딸 박마의 감독이 작업을 함께 했다.
두 모녀 감독이 복원한 영화 속 피해자들의 목소리는 선명하고 강렬하다. 수원 제암리교회 학살 사건의 유일한 생존자가 일제가 저지른 만행을 증언하는 모습은 그때로 돌아간 것만큼 생생하다.
나가사키·히로시마에서 각각 원자폭탄 피해를 본 두 할머니가 서로 마주해 화장품의 용도를 묻는 대화는 일상적이지만, 몸에 새겨진 피폭의 후유증은 그들 삶의 고난을 짐작게 한다.
때로는 삶이 어땠는지 묻는 말에 '말로는 다 할 수 없다'며 눈물만 흘리는 피해자도 있다.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없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박수남 감독은 이것이 펜이 아닌, 카메라를 든 이유라고 말한다. 침묵 자체가 보여주는 그간의 삶을 카메라는 담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박수남 감독이 조선인 피해자에 주목하게 된 배경에는 그 자신이 재일조선인 2세로서 차별과 멸시를 겪었던 삶이 있다.
한복을 입은 어머니와 함께 길을 걷다가 욕설을 들은 경험이 그의 기억에 뿌리 깊게 새겨진 것이다.
영화는 정체성 혼란을 겪던 박수남 감독이 조선인으로서의 삶을 선택하고 다큐멘터리 감독의 길을 걷게 된 여정도 조명한다.
위안부 할머니들을 담은 영화 '침묵'(2016)을 제작하고 일본 현지에서 상영회를 개최하는 등 최근까지도 기록을 위해 분투해온 박 감독의 모습도 영화에 담겼다.
박수남 감독은 목소리를 기록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며 원폭 피해자들의 마음을 열기 위해 술을 같이 마시며 일했던 일화를 전했다.
박 감독은 "마음을 열어야 말이 나오지 않느냐"면서 "그분들은 사실 이야기하려고 하지 않았다. 언어로서의 침묵을 듣는 것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됐다"고 말했다.
그는 "혁명을 만들기 위해 기록 영화를 만들고 있다"며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두 모녀 감독은 남아 있는 필름을 복원하고 오키나와섬에서 벌어진 집단자살 사건의 생존자 증언을 작품으로 만들 계획이다.
13일 개봉. 148분. 12세 이상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