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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삐삐선에 묶인 손, 머리엔 탄피…6·25 아산 민간인 학살터 공개

진실화해위, 성재산 방공호서 40여구 발굴…총살 직후 매장 추정

 

주)우리신문  김일권기자 |  한국전쟁 당시 충남 아산에서 인민군에 부역한 혐의로 학살당한 민간인 추정 유해가 발굴됐다.

 

2기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진실화해위)는 아산시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일대에서 한국전쟁 때 부역 혐의로 희생당한 민간인들로 보이는 유해 40구가량을 발견했다고 28일 밝혔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유해는 폭 3m·길이 14m의 방공호를 따라 빽빽하게 매장돼있었다. 대부분은 20대 후반∼40대 초반의 건장한 남성으로 추정됐다.

 

상당수 유해는 무릎이 굽혀진 상태로 발견됐다.

 

머리에는 파랗게 녹슨 탄피가 얹혀있고, 손목에는 군용전화선 '삐삐선'으로 보이는 전선이 감겨있었다. 양손이 결박된 채 총살당한 직후 매장된 것으로 보인다고 진실화해위 측은 설명했다.

 

현장에서는 A1 소총 탄피 57개와 탄두 3개, 카빈총 탄피 15개, 일제강점기 때 일본군이 사용한 소총인 99식 소총 탄피 등이 다량 발굴됐다.

 

아산 부역 혐의 민간인 희생 사건은 1950년 9∼11월 아산 공수리 성재산 방공호와 백암리(새지기) 일대에서 지역 주민들이 인민군 점령 때 부역했거나 그 가족이라는 이유로 경찰과 치안대 등에게 집단 살해된 사건이다.

 

공수리 지역은 지난해 5월 아산시와 아산유족회의 시굴 조사에서 유해 일부와 탄피가 확인되면서 유해 발굴이 가능한 곳으로 판단됐다.

 

이에 따라 진실화해위는 이달 7일 본격적인 발굴에 들어갔다. 국가기관이 한국전쟁 당시 부역 혐의로 희생된 사건의 유해 발굴에 나선 것은 처음이다.

 

 

2018년 아산시도 자체 유해발굴사업을 통해 배방읍 뒷터골 폐금광터에서 어른 150명, 어린이 58명 등 총 208구의 유해를 발굴한 바 있다.

 

진실화해위는 이 사건 희생자들이 가족 단위로 살해됐으며 유족이 없는 경우가 많아 그간 유해 수습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앞서 1기 진실화해위는 관계자 진술과 기타 자료를 토대로 아산시 일대에서만 총 800여명이 희생된 것으로 보고 2009년 5월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학살 당시 온양경찰서 수사계에서 근무했던 임모 씨는 1기 진실화해위 조사에서 "매일 밤 트럭으로 40∼50명의 부역자를 처형장소인 성재산 방공호로 실어 가 처형했다"고 진술했다.

 

배방면사무소에서 일했던 맹모 씨는 "1·4후퇴 때 배방지서와 면사무소에 부역자들을 색출하고 처형하라는 경찰서장의 지침이 하달됐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진실화해위는 4월 중순까지 배방읍 공수리 성재산 일대의 유해 발굴·수습을 마친 뒤 백암리 일대에서 발굴 작업을 이어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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