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김경환 기자 | 한국 영화의 세계화에 기여한 인물로 김동호(87)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1996년 부산국제영화제 출범을 주도한 그는 15년간 집행위원장을 맡아 부산국제영화제를 아시아 최대 영화제로 이끌었다. 부산국제영화제는 한국 영화가 세계로 뻗어나가는 창구 역할을 했다.
그런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의 영화 인생을 돌아보는 회고록을 두 권 펴냈다. '김동호의 문화노트'와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다.
"이 자리엔 책을 여러 권 낸 분도 많은데, 그분들은 출판기념회를 한 적이 별로 없어요. 그런데 제가 단 두 권을 내놓고 촌스럽게 출판기념회를 해 여러분을 모시게 돼 굉장히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김 전 위원장은 25일 서울 마포구 아트스페이스 합정에서 열린 출판기념회에서 이렇게 말하며 웃었다. 그는 "책이 별것 아니지만, 그냥 가져가 읽어주시면 저로선 영광"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이 이번에 펴낸 회고록은 그동안 신문에 연재한 이야기를 정리하고 보완해 엮은 것이다.
이 중 '김동호의 문화노트'는 그가 영화계에서 보낸 36년을 포함한 삶을 돌아보는 이야기다.
1937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난 김 전 위원장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61년 공보부에서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획관리실장까지 지낸 그가 영화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1988년 영화진흥공사 사장으로 발령받으면서다. 이후 예술의전당 사장, 문화부 차관, 공연윤리위원장 등을 역임하면서 문화 행정을 이끌었다.
이 책에서 김 전 위원장은 "공직 30년과 영화 인생 36년은 끊임없이 새로운 일에 도전했던 기간"이라며 "정신 없이 뛰어다니고 미친 듯이 일했던 60여년"이라고 회고했다.
이어 "90을 바라보는 지금도 나는 새로운 일에 도전하고 있다"며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들려고 지난해 2월 촬영용 캠코더를 한 대 구입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는 "다큐멘터리 영화를 찍는다고 다르덴 형제, 뤽 베송 등 거장 감독들을 만나 인터뷰하고 위기에 직면한 국내외 작은 영화관들을 찾아다니며 카메라에 담고 있다"며 "이 또한 '미친 짓'이 아닌가 싶다"고 썼다.
책에는 2022년 5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배우 강수연에 대한 회고도 담겼다.
김 전 위원장은 "강수연과 나는 부녀처럼, 남매처럼, 친구처럼 격의 없이 지내왔다"며 "21세의 젊은 나이에 왕관(베네치아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쓴 것이 멍에였을까, 그녀는 '월드 스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절제하면서도 강인하게 살아왔다"고 돌아봤다.
'김동호와 부산국제영화제'는 김 전 위원장이 자신의 운명과도 같은 부산국제영화제를 출범시키고 이끈 이야기에 초점이 맞춰졌다.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곳에서 아시아 최대 영화제를 일궈낸 데는 그가 오랜 공직 생활에서 체득한 수완과 정무 감각이 한몫했다.
그는 영화제가 안정적으로 발전할 수 있도록 부산시와 긴밀하게 조율했고, 외부에서 재정을 끌어오는 데도 서슴없이 나섰다. 그러면서도 영화제가 권력이나 자본의 입김에 흔들리지 않도록 명확한 원칙을 세웠다.
이 책에서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는 내 인생의 행로를 관료에서 영화인으로 바꿔 놓았고, 나라 안에서 활동해왔던 나를 세계를 무대로 뛰어다니는 국제인으로 변신케 했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