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박현정 기자 |
[편집자 주]
우키시마호폭침사건浮島丸爆沈事件’
인지認知하기를 ‘마이즈루만 인간대학살舞鶴灣 人間大虐殺’
UN총회에서 채택한 『집단살해죄의 방지와 처벌에 관한 협약』 에 규정된바
그 용어로 ‘제노사이드 Genocide=외국양민계획적•의도적대량집단학살外國良民計劃•意圖的大量集團虐殺’
독도, 위안부, 강제징용, 생체실험. 문화, 글. . 이 모든것을 정신없이 빼앗기기만 했던 암흑과도 같은 시간들.
어두웠고 어려운 그 시절 억울하고 안타깝게 끌려가 이유 모를 고생을 했던 조선인들의 이야기는 수 많은 책과 영화, 드라마, 다큐, 박물관 등 흩뿌려져 돌아다니면서 가슴을 후벼 파는 거짓말 같은 역사적 사실들이다.
하지만 현재의 우리는 전쟁은 커녕 그 시대를 각종 미디어나 책으로 보는 간접 경험이기에
피부로 와 닿지 않는것 또한 사실이다.
특히 위안부 문제나 강제징용의 경우는 은밀하고도 공공연히 자행되어졌기에 수면위로 드러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릴만큼 민감한 부분이기도 하다.
그들의 만행중에서도 (주)우리신문이 알리고자 하는 부분은 바로 `강제징용` 그중에서도 마이루즈항 인근에서 폭발해버린 우키시마호이다.
우키시마호.
1945년 8월 22일 오후 10시께. 일본 아오모리현 오미나토항에서 4,730t급 해군 수송선 우키시마호가 출항했다. 일본의 항복 선언에 따라 강제징용된 한국인과 그 가족을 본국으로 송환하기 위해서다. 해방과 귀향의 기쁨으로 가득 찬 ‘부산행 1호 귀국선’이었다.
그러나 배는 돌연 당초 목적지가 아닌 교토 마이즈루항으로 향했다. 부산 직항로를 벗어나 일본 해안선을 따라 내려갔다. 그리고 이틀 뒤인 8월 24일 오후 5시 20분, 육지와 300m가량 떨어진 마이즈루만 시모사바가 앞바다에서 의문의 폭발과 함께 물속에 잠겼다. 수천 명의 한국인 노동자들은 그리던 고국 땅을 밟지 못한 채 그렇게 희생됐다.
이 사건을 `우키시마 폭침 사건`이라 한다.
이 사건을 두고 많은 의혹들이 제기되는데 그 이유로 유족·시민단체는 “일부러 폭발”시켰다하고, 일본 정부는 ‘우발 사고’ 주장 반박하면서 허술한 인양과 뒤늦은 선체 수습, 폭발사고로 인하여 수 많은 인명피해가 있었음에도 선체 정밀 조사 없이 민간 매각, 그 선채는 고철로 팔렸을을 뿐만 아니라 사망자 숫자도 한·일 의견이 충돌했으며 진실 규명 시도도 번번이 좌절되었기때문이다.
(주)우리신문은 (사)우키시마연합회와 공동으로 강제징용되었다 돌아오지 못한 강제징용자들을 `우키시마호`의 이름으로 파헤쳐본다.
자료및 사진 공동제공/ (주)우리신문. (사)우키시마연합회. 우키시마폭침진상구명위원회 전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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