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신승관 기자 | "그 아저씨(계엄군)에게서 나던 술·땀 냄새 때문에 지금도 비슷한 냄새를 맡으면 항시 토를 합니다."
최경숙(71)씨는 30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5ㆍ18 성폭력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1980년 5월 19일 또는 20일 저녁. 당시 27세였던 최씨는 시댁에 맡겨둔 네 살배기 아이를 데리러 차를 타고 가던 도중 전남여고 후문 담벼락에서 총을 찬 얼룩무늬 군복의 계엄군 2명으로부터 붙잡혀 성폭행당했다.
계엄군은 최씨의 차에 불을 지르겠다며 협박해 저항할 수 없게 만들고 얼굴을 때렸다. 일부 군인은 차 밖에서 망을 봤다.
임신 3개월째던 최씨는 사건 이후 유산했고 군복만 보면 그날의 끔찍한 기억이 떠올라 두 아들은 군인이 아닌 의무경찰로 입대시켰다. 현재까지도 정신과 약을 복용 중인 최씨는 가해 군인의 냄새가 생생해 일상생활에도 수없이 헛구역질한다.
44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최씨에게 그날은 과거가 아닌 한순간도 떨쳐내지 못한 현재다. 최씨는 당시를 떠올리면 "몸이 장작개비처럼 느껴지는 고통을 겪었다"고 말했다.
이날 5·18 계엄군 등에 의한 성폭력 피해 증언자 모임 '열매'가 주관해 연 증언대회에는 최씨 외에도 3명의 피해자가 그날의 기억을 밝혔다.
다른 피해자 최미자(62)씨는 18세던 그해 5월 20일 전남대병원 인근 골목에서 군인 5명으로부터 폭행·성추행을 당했다고 고백했다.
군인들은 성추행 후 대검으로 최씨의 어깨를 찌른 뒤 가버렸고, 기절한 최씨는 근처 대학생들의 도움으로 병원에 입원해 치료받았다.
최씨는 "5ㆍ18 이후 쫓기듯 결혼한 남편과의 성관계도 무섭고 싫었고, 부부관계가 원만하지 못해 결국 이혼했다"고 털어놨다.
전남도청에서 계엄군에게 끌려가 조사받던 중 성폭행을 당했다는 열매 대표 김복희씨는 "내 잘못이 아니라 국가의 잘못에 의해 생긴 일이기 때문에 그걸 떨치려 정말 치열하게 살아왔다"며 "아픈 기억을 세상에 드러내는 게 너무 두렵지만, 다시는 국가가 국민에게 무력으로 불행한 일을 하지 않아야 하기에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앞서 5ㆍ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는 5ㆍ18 민주화운동 기간 계엄군 성폭력이 의심되는 52건의 사건을 포착했으나 지난해 12월 16건에 대해서만 진상규명 결정을 내렸다. 상당수의 피해자와 유족이 이미 숨졌거나 과거를 밝히기 꺼린 까닭이었다.
피해자들은 이날 "부족한 조사 역량과 나서지 못한 피해자들로 인해 종합적인 피해 실상을 밝히지 못했다"며 추가적인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