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신문 이영식 기자 | '관현악으로 연주하는 여러 악장으로 이뤄진 곡'인 교향곡에서는 때론 지휘자의 몸짓도 하나의 악기와 같은 역할을 한다.
21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러시아 출신 지휘자 바실리 페트렌코가 보여 준 지휘가 그랬다.
영국 로열 리버풀 필하모닉의 상임 지휘자를 거쳐 2021년부터 영국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활동하는 페트렌코는 세계가 주목하는 '차세대 마에스트로'다.
이날 서울시립교향악단(서울시향)과 함께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을 연주한 페트렌코는 포디움 위에서 발을 구르고 어깨를 들썩이며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190㎝가 넘는 장신의 페트렌코는 긴 팔을 휘적이며 오케스트라 단원들에게 명확한 지시를 전달했다. 그의 지휘는 비단 단원들뿐만 아니라 공연장 안 모든 관객에게도 아주 정확하게 인식됐다. 마치 곡에 대한 정보를 구체적으로 설명해주는 악보와 같았다.
귀를 막고 지휘자의 몸짓만 봐도 연주의 흐름을 단박에 알아챌 수 있는 재미있는 경험을 관객에게 선사한 것이다. 오케스트라의 교향곡 연주에서 관객들은 듣는 즐거움과 함께 보는 즐거움까지 덤으로 얻었다.
페트렌코와 팀파니 연주자의 기막힌 호흡도 이번 공연에서 또 하나의 볼거리였다.
악장마다 이채로운 템포로 이뤄진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8번'은 팀파니의 둔중한 소리가 연주의 중심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팀파니의 연주에 따라 공연에 성패가 달린 것이다.
이를 잘 아는 페트렌코는 팀파니가 연주되는 악절마다 팔을 길게 뻗어 연주자를 가리켰다. 직접 눈빛을 교환하며 연주자가 연주 템포를 수월하게 맞출 수 있도록 도왔다. 연주자도 그런 페트렌코의 지휘에 보답하듯 열정적인 연주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었다. 당연하게도 공연이 끝난 뒤 커튼콜 때 가장 많은 관객의 박수갈채를 받은 오케스트라 단원은 바로 팀파니 연주자였다.
'음악가들이 최고의 자질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휘자의 최고 덕목이라는 페트렌코의 지휘 철학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공연이었다.
페트렌코의 '눈으로 보는 악기'와 같은 지휘는 오는 28일과 29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다시 만나볼 수 있다.
페트렌코와 서울시향은 '팔색조 바이올리니스트'라고 불리는 레이 첸과 함께 멘델스존과 차이콥스키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다.